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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1편

2015-09-24 10:59 조회 1,853
유네스코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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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벌일 때나 평화를 누릴 때나 숭고한 지혜를 생각할 줄 알았다는 것이 가장 당당한 여신이자 그리스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였던 아테나의 공통된 특징이다. 신화에 의하면 여신 아테나는 오빠 포세이돈과 결투를 벌여 아티카를 손에 넣은 뒤 케크롭스 왕에게 바쳤는데, 그때 그녀가 위엄있게 등장한 언덕 꼭대기에 아크로폴리스가 건설되었다. 어느 날 아테나는 왕에게 올리브 나무 한 그루를 바쳤고, 포세이돈은 말 한 필과 유용한 무기를 바쳤다. 그러자 전쟁보다는 평화와 정의가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혜로운 왕은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의 상징이며 기름을 짜서 먹을 수도 있는 올리브 나무를 선택했다.



이 지역은 신석기 시대에 최초로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며, 마케네 문명시대에는 요새화된 성채였다. 기원전 6세기에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아크로폴리스가 기념비적인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진 속의 웅장한 신전은 파르테논 또는 아테네 만신전이다.



신석기 시대 이후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고, 미케네인들에 의해 요새가 건설되기도 했던 이 가파른 언덕에, 기원전 7세기에 들어 아테나와 제우스, 아르테미스, 헤라클레스 그리고 전설적인 사건의 패배자였던 포세이돈에게 바치는 신전이 건설되면서 이곳은 아테네폴리스의 종교 중심부가 되었고, 지금도 그리스의 혼잡한 수도 위에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아크로폴리스가 기념비적인 위용을 처음으로 갖추게 된 것은 기원전 6세기 독재자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 재위 기간이었다. 그는 아테나 여신을 기리기 위해 4년에 한 번 8월에 열렸던 판아테나이아(Panathenian) 경기를 제창하기도 했다. 100년 후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침입하여 잠시 아크로폴리스에 자신들의 우상을 세운 일이 있은 후 통치자 키몬은 건축가 칼리크라테스에게 아테나 파르테노스(Athena Parthenos, 처녀 아테나라는 뜻-옮긴이)에게 봉헌하는 웅장한 신전을 세우도록 명령했다.


기원전 449년은 아크로폴리스가 고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한 기념비적인 해였다. 아크로폴리스는 자랑스런 도시 국가 아테네의 철학과 윤리, 종교적인 가치, 정치적인 이념과 건축 기술의 총체이다. 도시가 발전하는 데는 두 인물이 존재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국가 지도자 페리클레스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인 페이디아스이다.


칼리크라테스가 아테네 파르테노스를 위해 건설하기 시작한 파르테논 신전은 공사 중단을 한 번 겪고 나서 건축가 익티노스(Ictinos)에 의해 완성되었다. 익티노스는 원래의 설계를 변경하여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산술과 기하, 철학 이론에 따라 특이한 도리아식의 원기둥 8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지금의 형태로 바꾸었다. 건물의 개별적인 요소가 너무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당시의 여러 건축 기법은 오늘날의 건축가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건축 기법뿐만 아니라 페이디아스와 그의 우수한 생도들의 예술적인 신전 장식 덕분에 파르테논 신전은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 되었다. 불행하게도 페이디아스가 금과 상아를 입혀서 만든 거대한 아테나의 신상은 파괴되었고, 신전을 장식했던 프리즈의 상당 부분도 유럽, 특히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 흩어져 보관되어 있어서 아쉽지만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파르테논 신전의 박공벽에 남아 있는 뛰어난 조각의 잔재들만 보아도 처음의 위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원래 밝게 채색되어 있었던 조각 작품에는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는 모습이라든지 도시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아테나가 포세이돈과 결투하는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었다.




기원전 420년에 세워진 이오니아식 스타일의 에렉테움 신전 남쪽 벽을 떠받치고 있는 카리아티드의 모습. 조각가 알카메네스가 만든 원래 있던 6개의 우아한 카리아티드 중에 5개는 현재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고, 마지막 1개는 런던에 있는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마지막으로 건립된 건물은 세기말에 세워진 에렉테움 신전이다. 파르테논 신전 북쪽, 아테나 여신이 선사한 신성한 올리브 나무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설계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일찍이 포세이돈과 헤파이스토스신에게 제사지내던 곳이었다. 이 신전의 특징은 로지아(loggia, 한쪽 벽이 없는 트인 복도-옮긴이)에 원기둥 대신 카리아티드(Caryatid)라고 부르는 여섯 개의 호리호리한 처녀 입상이 떠받치고 있는 점이다. 그 처녀상을 만든 사람은 페이디아스의 제자 알카메네스(Alcamenes)로 추정된다.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은 복제 처녀상이고 원래의 처녀상은 대기 오염으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유적지 내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아테네는 몰락했지만 아크로폴리스에 대한 사람들의 경외심은 여전했다. 그것은 꼭 종교적인 의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특히, 로마 시민들에게 아크로폴리스는 철학과 정치, 고대 그리스의 미학의 진수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이었다. , 로마 시민들이 모방하고 싶은 모범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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