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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특강 <주상관매도 主上觀梅圖>, 김홍도, 上편

2015-12-07 09:10 조회 1,075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들려주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 <한국의 미 특강>

<주상관매도 主上觀梅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담채, 164.0×76.0cm, 개인 소장.


, 다시 그림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예술 작품엔 위대한 작품이 있고, 또 자랑스런 작품이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은 정색을 하고 똑바로 서서 박물관 같은 곳에서 바라보기에 걸맞은 것이라면, 사랑스런 작품은 이를테면 나만의 서재에다 걸어 놓고 늘상 바라보면 마음이 참 편할 것 같은, 그런 그림을 말합니다.


그림이 텅 비었죠! 겨우 화면의 5분의 1정도밖에 그리지 않았습니다. 남자 어른 키 만한 큰 그림인데 어떻게 화가는 요만큼만 그리고 그림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역시 서양식으로(강사: 좌상에서 우하로 비스듬히 그어 보임) 보면 또 X자만 그려집니다. 이렇게 우리 식으로 비껴 보면(강사: 우상에서 좌하로 사선을 그어 보임)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잡히게 되죠.


제가 단원 김홍도에 대해서는 2년간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고 전시를 하면서 책도 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분과는 꿈에서도 볼 정도로 아주 친한데, 단원은 화가일 뿐만 아니라 글씨도 잘 썼고, 게다가 백석 미남에다 키가 훤칠하게 컸는데 성격까지 아주 좋았던 사람이라고 전하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찾아보았더니 김홍도는 또 당대에 유명한, 소문난 음악가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지은 시조가 두 수 남아 있습니다. 제가 그 가운데 시조 한 수를 읽어 볼 테니 이 그림을 보시면서 서로 어울리는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 하늘이요 하늘 우희 물이로다.

이 중에 늙은 눈에 보이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어떻습니까? 시조의 경계가 이 그림하고 아주 똑같죠? 언덕 중앙 부분만 초점이 잡혀서 분명하고 주변으로 갈수록 어슴프레하게 보이고 뿌예지면서 여백 속으로 형상이 사라집니다. 이 꽃나무 언덕의 모습을 만약 동자가 보았다면, 아주 깨끗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노인이 늙은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여기만 겨우 분명히 보이는 거예요.


이거 정말 기가 막힌 작품 아닙니까? 사람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영상을 끄집어내어, 보는 그 사람과 함께 그렸습니다. 20세기 서양의 초현실주의 화가들도 꿈조차 못 꾸던 경지입니다. 사물과 함께 그것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까지 함께 바라본다는 것은 거의 명상의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늙은 단원의 심력心力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저는 조금 전 시조를 낭독하면서도 스스로 참 창피했습니다. 원래 시조란 낭독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봄무우우ㅡ하고, 유장한 평시조 가락으로 길게 끌었다가 편안하게 흔들어 가면서 시조창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유장하게 넘실대는 선율과 화폭의 이 드넓은 여백이 꼭 맞아떨어지게 되지요.


화가는 원래 杜甫두보의 시 한 수를 감상하고서, 그 남은 흥취로 한편으로는 시조를 짓고 또 한편으로는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되는데, 여기 화제畫題 쓴 솜씨를 좀 보세요. 약간 기울여 써서 그 연장선을 따라 눈길을 옮기다 보면 아래쪽 주인공 노인의 주황빛 옷과 만나는데, 이것이 글씨 위아래 찍은 주홍빛 도장 빛깔과 기막히게 어울립니다.


무채색 바탕에 벽돌빛의 어울림이 얼마나 고상한 것인지, 아마 여성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수묵화의 먹빛과 주홍빛 붉은 도장 색이 한데 어울려 고상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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