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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치료> 당신의 자아는 안녕하십니까

2015-12-05 09:00 조회 1,830
진짜 나를 만나는 심리학
불안함에 잠 못 들고 쉽게 욱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법

백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백곰이 굶주리다가 물개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물개들은 기를 쓰고 반항하다 도망간다. 결국 백곰은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치고 굶어 죽었다. 그런데 그 죽는 모습이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사냥감을 잡을 때도 그렇게 절박한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먹이를 놓쳤으니 죽을 뿐이다.


다른 동물도 그렇다. 사자가 물소를 공격한다. 물소 무리가 와서 그 물소를 지켜 주려 둘러싸고, 사자들이 주위에 몰려 있다. 한판 싸움이 붙을 것 같았는데 물소 무리가 갑자기 떠난다. 상처 입은 물소는 사자밥이 된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삶과 죽음이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을 뿐이다. 동료가, 심지어 새끼가 죽어도 그렇게 애태우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것 같으면 차라리 다른 동물의 밥이 되게 내버려 둔다. 노력하다 안 되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에 절박하지 않은 그들을 보고 있으면 무생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죽을 것 같으면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친다. 누가 내 가까운 사람을 해치기라도 하면 복수를 한다며 길길이 날뛴다. 부모님을 죽인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불구대천不俱戴天)는 말도 있다. 이미 죽었는데 왜 그럴까? 바로 인간 사회에만 있는 독특한 의존심 때문이다.


의존심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쥐 한 마리를 물에 빠뜨려 놓으면 파닥거리다 죽는다. 그런데 쥐가 죽을 만할 때쯤 몇 번 구해 주면 파닥거리는 시간이 몇 배나 길어진다. 구해 주기를 바라면서 생명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즉 의존심은 그 힘이 생명력보다 몇 배나 더 강하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려고 들어갔다가 같이 물에 빠져 죽는 경우가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엄청난 힘으로 매달리기 때문이다. 물론 의존도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의존이 오히려 삶을 지배할 때도 있다. 삶은 보이지 않고 의존만이 남는 것이다. 이런 의존심에서 온갖 감정들이 파생한다. 불안, 우울, 초조, 해리(解離)상태, 기억상실, 책임감, 복수, 투정, 생떼, 요구, 은혜,책임, 설득, 연민 등등. 버림받을까 봐, 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생기는 감정들이다. 이런 감정들은 의존해 봤자 별로 얻을 게 없는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 사회에 독특하게 존재하고 있고 특히 요즘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상대에게 무력한 의존성을 전달함으로써 따뜻한 보살핌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적응적인 가치가 있어 진화에서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동물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울하다고 누가 거들떠보기라도 하겠는가. 무기력하게 처져 있으면 바로 잡아먹혀 버릴 것이다.


사자가 사냥하다가 다쳤다. 어미 사자가 그 사자를 한 바퀴 빙 둘러보더니 그냥 가버린다. 다른 사자들도 그 뒤를 따른다. 다친 사자는 하이에나 밥이 된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자기 목숨은 자기가 관리해야지 누구한테 의지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다르다. 불쌍한 눈으로 애절하게 바라보면 상대는 연민을 느끼면서 도와주고 싶어진다. 부모 형제는 말할 것도 없다. 자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어떤 아버지가 말했다.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다고.


의존심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불안, 우울, 자괴감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도 따라붙는다. 물에 빠진 쥐가 다시 구해 주기를 기다리며 파닥거릴 때 얼마나 불안할까? 물은 콧속으로 들어오고, 숨은 막히고 심장은 터질 것 같고, 구원은 빨리 오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남이 구해 주기만을 기다리면서 불안, 초조, 후회하거나 답답해 미치는 것이다.


의존심은 심지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의존적으로 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도 있다. 의존심이 목숨보다 몇 배나 힘이 강하니 목숨 정도는 가볍게 끊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보다 진화된 생명체가 기생충이라고 한다. 기생충은 숙주에 딱 달라붙어 숙주의 영양분을 빨아 먹고 살다가 숙주가 죽으면 같이 죽는다. 인간처럼 많은 기능을 발달시키지 않아도 잘 먹고 살 수 있으니 인간보다 진화했다는 소리를 듣는가 보다. 그런데 요즘은 인간 사회에서도 기생 인간들이 늘고 있다. 부모에게 의존하면서 부모의 영양분만 빨아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기생충이 아무리 인간보다 진화해도 한계가 있다. 바로 숙주가 죽으면 자기도 죽는 것이다. 물론 숙주가 죽기 전에 재빨리 빠져나와 다른 숙주를 찾으면 오래 살 수도 있지만 그건 만만치 않다. 다른 숙주를 찾는 것은 독립된 행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의존심이 철저히 몸에 배어 있는 기생충에게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숙주가 나타나 스스로 몸을 내어주기 전에는.


『아라비안나이트』에는 사람 잡아먹는 노인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섬에 불쌍하게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발견했다. 그 노인은 그 사람보고 업어서 건너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사람이 업어 주면 그 사람 등에 딱 달라붙어 죽을 때까지 부려 먹는 무서운 존재였다. 그 사람이 죽으면 잡아먹고 또 하염없이 불쌍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그 노인들은 아마 지금은 다 멸종했을 것이다. 새로운 숙주가 나타나기 전에 다 굶어 죽었을 테니까. 숙주를 만나는 행운이 자주 있는 것이 아니다.


기생 인간이 부모 외의 다른 숙주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형제, 친지도 가혹한 ‘남’이다. 그래서 기생 인간들은 부모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도 한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시면 어떡하느냐고 극도로 불안해하고, 그러다 돌아가시면 공황 상태에서 자살도 서슴지 않는다.


기생 인간은 숙주에게 가혹하다. 숙주가 떠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생 인간은 숙주에 폭행도 하고 연민도 느끼게 하며 어떻게든 숙주가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기생 인간의 공통된 특징은 아이 같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 같은 얼굴(동안, 童顔)을 좋아하지만 마음까지 동안인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도 없다. 그들에게 잘못 걸리면 딱 달라붙어 내 등골까지 빼먹는다.


기생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은 버린다는 말이다. 숙주가 견디다 못해 “내가 널 정말 못 버릴 줄 알아?”라고 하면 그 말을 번복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살 협박이나 자살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의존을 떠나서는 살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의존심을 죽음의 덫이라고 부른다. 잘못 걸리면 아무리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평소에 의존심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 부모가 오래 살 테니 그때쯤 같이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의외로 남아 있는 시간은 길다. 나 홀로 30~40년을 산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할까.


어쩌면 인간도 지구의 기생충이다. 지구에 달라붙어 지구의 온갖 영양분을 빨아먹고 산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기생만 하다가는 지구가 죽으면서 인류도 죽는다. 지구도 오래 살리고 자신도 오래사는 법을 찾아야 한다.


어렸을 때 친구와 수영장에 놀러 갔었다. 수영을 잘하지 못할 때라 수영장 언저리에서 맴돌며 놀았는데 잘못해서 친구가 물에 빠져버렸다. 다행히 어떤 어른이 들어가 친구를 구해 주었다. 그런데 친구는 도움을 받으면서 자기도 부지런히 팔을 저었다. 그분에게만 매달려 의존하지 않은 것이다. 그 어른에만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면 그 어른과 같이 죽거나 그 어른이 친구를 버리고 홀로 나왔을 것이다


상호 의존은 바람직하지만 의존은 심각하게 경계해야 한다. 그러니 아침마다 자신에게 이런 인사를 건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신의 자아는 안녕하십니까? 혹시 간밤에 의존심이 스며들어와 당신을 기생 인간으로 만들려 하지는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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