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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시간 <레오나르도 다빈치, '담비를 안은 여인'>

2015-12-11 18:00 조회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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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시간


<레오나르도 다빈치_담비를 안은 여인_1489>


화가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 ‘이 그림 하나 완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화가마다 그림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이 다르고, 그림마다 완성으로 가는 여정 또한 다릅니다. 단번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몇 년을 작업실에 놓고 시큰둥하게 노려보기만 하다가 붓 터치 하나 간신히 하게 되는 그림도 있지요. 결국 화가가 표현하고 싶은 지점에 가장 가깝게 왔을 때, 그림이 끝나고 화면 안에 질서가 생기며 그림 자체의 균형과 힘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지요.


인류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하고 놀라울 정도로 완전한 화면을 구사했던 르네상스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살아생전 많은 회화를 남기진 않았습니다. 의뢰 받는 그림도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완성을 미루기 일쑤였다고 해요. 그러나 드로잉까지 포함해 그가 남긴 거의 모든 그림이 시대의 미스터리로 여겨질 만큼 완벽하게 평가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여기 이탈리아 소녀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분명 귀족의 의뢰로 만들어진 여인의 초상이지만, 그녀는 영원의 시간에 속한 신화 속 존재 같습니다. 그녀가 안고 있는 담비의 당찬 눈빛도 옹골찬 잔 근육도 기묘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죠. 짐승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길고 우아한 손가락은 어떤 신비로운 전설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담비와 여인은 서로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끼며 오른쪽 공간을 응시하고 있죠. 오른쪽을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은 그림 바깥에 또 다른 존재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조용한 초상화에 담겨 있는 신비롭고 의미심장한 분위기는 <모나리자>를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거의 모든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효과입니다.


이 그림은 다빈치가 밀라노의 궁정화가였던 시절,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경의 의뢰로 제작된 그의 애인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화입니다. 17세 정도의 나이로 표현된 체칠리아의 품에 안긴 담비는 루도비코 경을 상징하는 것인데, 이 그림은 둘 사이의 애정을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라 알려져 있죠. 다빈치가 루도비코 경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단비의 존재로 두 연인의 친밀감을 그림 속에 담아낸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앞서 말한 이 그림의 특별한 아우라를 설명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분명 다빈치는 의뢰인의 요구보다는 더 큰 목표가 늘 발동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평생 자연만물의 이치에 대해 넘칠 만큼의 호기심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남녀 시체를 30구 이상 해부해서 그림으로 기록할 정도로 인간 육신을 해박하게 이해했던 의학자였고 비행기와 잠수함 전차, 무기 등을 직접 설계해 제작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기술자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 음악, 철학에도 뛰어난 조예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런 그가 그저 망막에 비친 사람의 겉모습을 모방하는 것에만 만족했을 리 없겠죠.

그는 한 점의 그림 안에서도 그가 이해한 인간과 세상의 섭리를 담아내고 싶어 했습니다. 분명 특정한 누군가를 닮게 그리도록 의뢰 받는 초상화이지만 다빈치의 인문학적, 과학적, 해부학적 이해가 압축되어 그림 구석구석에 형태와 색 공간의 완벽한 해석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지적인 이해의 층이 화면 속에 베어들어 검은 여백마저도 무언가로 꽉 들어차 있는 듯 무게감을 느끼게 합니다. 기하학과 과학, 문학, 해부학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다빈치 그림 속 밀도는 대상에 대해서 정확하고 완전하게 표현하려는 르네상스시대의 완벽한 이성적 인간을 향한 의지입니다.


화면 속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는 공기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대상의 윤곽을 부드럽게 그리는 스푸마토 기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전매특허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마저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며, 그 공기 속에서 변화하는 무수한 색의 차이 또한 기필코 따라잡아야 할 실체였습니다. 그렇게 다빈치의 모든 그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엄연히 존재해야 하는 화가의 정교한 탐구가 배어 있고, 그것이 그의 그림들을 신비로운 아우라로 감싸고 있습니다.


최근에 뉴스에서 이 그림을 X-ray로 양파껍질 벗기듯 벗겨내어 화가의 완성과정을 분석한 결과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요. 애초에 단비는 없었고, 여인이 홀로 존재하다가 중반에 짙은 회색의 호리호리한 단비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 단비마저 없어지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하얗고 탐스런 단비가 체칠리아 품에 자리 잡게 되죠. 이 분석은 매우 중요한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화가의 시간, 화가가 원하는 이미지를 만나기 위해 지독하게 망설이고 결정하고 번복했던, 마침표를 찍기까지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캔버스 앞에서 끊임없이 머뭇거렸을 이 발걸음은 그리려는 대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통찰하고자 했던 르네상스적 인간의 원대한 열정이라 생각합니다. 지워진 화면, 실패한 붓질, 단념된 구도는 그 시간과 함께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선택을 하려고 했던 화가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물감 층 사이에 여전히 신비한 힘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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