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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향내 가득한 페추니아 꽃

2015-08-04 22:06 조회 1,358
일기 그리는 엄마-강진이
가족과 이야기와 추억을 그리며 나는 행복해진다.

무더위에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그래도 어제, 오늘은 바람이 불어 좀 살만 하네요.

제 등 뒤로 난 창문에 걸린 블라인드가

바람에 덜커덩 덜컹 하는 소리조차도 고맙게 들립니다.


오늘도 전 따뜻한 커피 고집하며 ^^

오랜만에 글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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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추니아 꽃


한참을 졸다 화들짝 놀라 서둘러 내리고 보니

두 정류장이나 앞서 내렸다.

다시 버스를 기다리기도 뭐해서

슬슬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촌이긴 해도 마을을 병풍처럼 감싼 불곡산자락과

유유히 흐르는 탄천 덕분에 나 나름대로는

늘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 속에 산다고 생각되는 우리 동네다.


차 타고 지날 때는 잘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는 햇살도 좋고, 멀리 보이는 푸르른 산도 좋고,

반짝반짝 빛나는 시내도 좋기만 하다.

긴 탄천다리를 건너는데 다리 난간 화단에

만발한 진분홍 꽃이 밀려오듯 시야에 들어왔다.

아, 곱다. 페추니아.


중고등학교 시절, 교실 창가마다 화단이 있었다.

난 같은 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

6번의 봄마다 창가 화단에 페추니아를 심었다.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모종을 반 친구들과 함께

별다른 연장도 없이 필통 속의 연필이나 자,

손을 이용해 흙을 파고 심었다.

작은 창틀 밖으로 팔을 뻗어 꽃을 심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들과 낄낄 깔깔, 하하 호호

얘기꽃을 함께 피우며

줄 맞춰 열심히 페추니아를 심었다.


보슬비를 맞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시원한 밤공기 속에서

페추니아 줄기는 무럭무럭 자랐다.

주번이 되면 등교하자마자 물을 주었고 시든 잎은 따내고

넝쿨이 예쁘게 자라도록 줄기를 매만져 주었다.

같은 종류의 같은 분량의 꽃을 심었는데도

등굣길 올려다본 각 반의 화단은 비슷한 듯 참 달라 보였다.

한 송이, 두 송이, 열 송이, 스무 송이...

매일아침 우리의 안녕 인사를 받으며

페추니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곱게 만개했다.


그 시절부터 페추니아는 내게

진딧물 잘 꼬이는 향기 없는 꽃이 아니라,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마을 곳곳에 심어놓는

이름 없는 진분홍 꽃이 아니라

바라볼 때마다 아늑한 시절로 안내하는

추억의 향내 가득한 꽃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아파트 사거리 신호등 앞에 와 있다.

옆에 무리지어 있는 여학생들이 재잘대는 모습이

꼭 그 시절의 나 같다.

아이들의 꾸밈없는 미소가 어쩜 저리 예쁠까,

저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예쁜지 알까?

훗날, 저 아이들에게도 이 시절이 소중하게 추억되길

지금 하루하루가 즐겁게 채워지길 조용히 바래본다.


201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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