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닫기

로그인/내정보/메뉴

이 레터가 마음에 드셨나요?
지금 많은 사람들과 나눠보세요.

공유하기

나누고 싶은 이야기, 마이레터

포켓 담기와 푸시 알림으로 더욱 편하게!

앱 설치하기

<길 위의 풍경> 작가의 말 : 길은 길을 부른다

2015-12-17 18:49 조회 422
길 위의 풍경
여행자와 함께 흐르는 하늘과 바람과 강물, 풍경에 관한 진심어린 소통

길은 길을 부른다



길은 나와 세상 사이에 있다.

길은 고독한 한 점(點)에 머물던 나를 세상과 관계 맺게 해주는 통로(通路)라고 할 수 있다. 집 대문을 열고 골목에서 나온 사람들이 속속 길에 합류, 그 흐름을 따라 흘러가고 돌아오는 풍경은 발원지로부터 유역에 이르는 강의 흐름을 닮았다. 물줄기는 지구의 높낮이와 기울기, 혹은 일월성신의 인도에 따라 일정한 방향, 즉 바다라는 더 큰 흐름을 향해 흐른다.


내가 가장 위대하게 생각하는 우리 인류의 선조는 태평양 그 많은 섬과 섬을 징검다리 삼아 햇빛 아래에서도, 별빛 아래에서도 항해를 멈추지 않았던 폴리네시안들과 대서양의 찬 물결 속에 자맥질을 멈추지 않았던 바이킹이라고 할 수 있다. 물길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 수평선 저 너머에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질 거라는 치밀한 짐작, 그 짐작에 대한 자기 존중감을 바다에 뛰어드는 것으로 표시했던 무모함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의 크기를 가능케 해주었을 것이다.


한 지점과 한 지점을 잇는 선으로서 길은 지구라는 별의 탄생부터 이 지구의 표면에 존재했으나, 그 길을 발견하고 거기 삶의 면적을 건설한 이들은 이와 같이 길을 찾아 나선 이들이었다. 스키타이와 흉노와 몽골 사람들은 육지를 바다처럼 항행하였고, 베두인 캐러밴들은 열사의 땅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갔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길들은 모두 선조들이 먼저 걸었던 길이다. 인간의 언어 속에 시간에 관한 우리들의 깊은 고민이 갈무리되어 있듯이, 길에는 시간과 시간의 길이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이 총체적으로 깔려 있다 할 것이다.


길 위에서 나는 하염없이 작다. 풍경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순간마다 나의 왜소함과 빈곤함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입구만 보여줄 뿐, 출구는 보여주지 않는 세상의 길과 글의 숲을 나는 헤매고 다녔다. 여기 묶은 글들은 그러한 방황과 모색의 기록들이다.


여행이란 여기서 저기로 가는 것을 꿈꾸고 실현하는 행위일 터… 나는 왜 길을 꿈꾸고 또 막상 길 위에선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았는지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의 나는, 그 길을 헤매고 다닌 과거와 선택의 총합으로서 나라는 것… 나는 길 위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며 여기까지 왔다.

하늘에 구름이 없으면, 바람이 부는 것을 알기 힘들고, 하늘이 또한 저처럼 무량함을 쉬 깨닫기 힘들다. 운수행각(雲水行脚)이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나는 어디에 서야 하는지, 나의 고민을 나는 내 몸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가 만난 풍경들은 응물상형(應物象形)의 외적 자아라고 할 것이다.


하나의 길은 또 다른 길을 호출하여 이어진다, 끊임없다. 그 간단 없는 삶의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정처 없다. 하여, 하나의 풍경에 뛰어들 때마다 나는 망설이며 자꾸 뒤를 돌아본다, 이 낯선 풍경이 나를 또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의 길이가 나의 최선을 증명하는 동시에 나의 한계라는 것을 잘 안다. 이 글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와 함께 해준 카메라와 렌즈들에게 감사한다. 나보다 더 나이가 든 렌즈를 사용할 때의 황송함과 안도감이 낯선 풍경 앞에서 주눅 들지 않게 도와줬다. 내 여행을 가능케 해준 배낭과 신발, 펜과 노트, 그리고 내가 이용한 모든 교통 수단들에게 또한 감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몸에 감사한다. 이 여정이 계속되는 동안 내 몸은 내 마음을 위로했다.


고덕산 우거에서 김병용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