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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특강 <해탐노화도>, 김홍도

2015-12-21 09:10 조회 1,202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미술사학자 오주석이 들려주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 <한국의 미 특강>

<해탐노화도>, 김홍도, 종이에 수묵담채, 23.1×27.5cm, 간송미술관 소장


이건 손바닥만 한 그림으로 김홍도가 그린 건데,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꽉 붙들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갈대꽃 로蘆자는 과거에 붙은 선비한테 임금님이 주시는 고기 려臚자 하고 발음이 같아요. 따라서 갈대꽃을 붙드는 것은 과거에 합격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하고 갈대꽃을 그릴 때는 반드시 부둥켜안은 모습을 그립니다. 보세요. 뒤로 발랑 나자빠지면서도 결사적으로 잡고 놓지를 않죠?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니까 소과小科, 대과大科를 다 붙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게딱지는 딱딱하니, 한자로 쓰면 갑甲이니까 갑을 병정무기경신임계, 해서 첫 번째에 옵니다. 소과, 대과 둘 다 장원급제하라는 게 되지요. 참 꿈도 야무집니다!


그래서 숨은 뜻이 워낙 원대하고 씩씩하기 때문에 그림도 시원시원하게 그렸죠. 갈댓잎 실선을 쓱 끌어오다가 꾹 눌러서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며 출렁거리게 그리고, 노란색을 좀 더 섞어 다시 아래로 한 번 더 긋고, 마지막 이파리를 교차해서 긋다가 힐끗 보니까, 처음에 그려 넣은 획이 좀 짧아 보이지요? 에이, 더 그어야겠다 해서 덧그렸죠!


그러니까 여백이 아주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화제畫題는 이렇게 썼어요. 참 속 시원한 명필입니다. - 단원이 글씨도 이렇게 잘 썼기 때문에 단원, 단원 하는 거지, 그림만 잘 그렸던 게 아닙니다.-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이라, 단원檀園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이거 참 멋들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익살도 익살이지만 그 안에 또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게 있죠. 네가 나중에 고관이 되었어도 하늘이 준 네 타고난 천성대로 옆으로 삐딱하게 걸으면서 할 말 다 해야지, 임금님 앞이라고 쭈뼛쭈뼛 엉거주춤 앞뒤로 기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는 거죠! 장난스러우면서도 뜻은 깊고, 참 옛 분들은 이런 식으로 놀았습니다. 작은 그림이지만 그 뜻이 얼마나 장합니까?


이 그림에서도 게가 갈대꽃을 물었지만 하나, , 세 마리인 것을 보니까 아마 초시初試도 합격 못한 분에게 준 그림 같아요.(108-게 그림) 여기 화제를 보면 위유로신행찬수爲柳老贐行饌需 사증寫贈이라 썼습니다. 유씨 노인께 과거 길 떠나시는데 선물로 드리는 것이니, 이놈을 가지고서 가시다가 게장을 끓여 드십시오! 찬수饌需로 쓰십시오!했어요.


이것도 익살을 떤 것이지만, 제 생각에 왜 이런 장난을 쳤나 하고 생각해 보니, 좀 서글픈 내력이 엿보입니다. 그림 주인이 유씨 노인이라고 했죠? 요새는 사법고시 공부하다가 나이가 사십만 넘어도 너무 고생만 한다고 안스러워 하곤 하지만, 예전엔 그 놈의 진사進士나 생원生員 소리 한 번 들어 보려고 죽는 날까지 과거시험만 보다가 돌아가신 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늙은 몸으로 시험 치러 가는 노인 심사가 얼마나 처량 맞았겠습니까. 그래 노인네가 과거시험 보러 가는 씁쓸한 길이니까, 그 울울한 마음을 풀어 드리려고 가다가 게장 끊여 드세요하고 짐짓 장난을 친 겁니다.


앞 그림이나 이 그림, 모두 게를 그렸지만 참 재빠르게도 그렸습니다. 중간치 붓으로 그저 몇 번 쓱쓱 긋고 나니까, 어기적어기적 게가 옆으로 기어가지 않습니까? 몇 분 안에 끝내는 이런 속필速筆 그림, 옛 그림의 별난 멋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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