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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미네 이야기> : 투덜쟁이 보미의 분홍티

2016-01-08 09:00 조회 601
숲속 나라 동화 이야기
엄마가 읽어주는 하루 5분 창작 동화 글.최재희

보미의 분홍티가 터덜터덜 세탁기 문을 열고 들어섰어요. 그리고 세탁기 안 공간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어요.


“안녕, 어서와.”


세탁기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어요.


“에휴, 전 별로 안녕하지 않아요. 여기로 또 오고 싶지 않았거든요.”


보미의 분홍티는 인상을 구기며 말했어요.


“그래? 난 분홍티 보고 싶었는데.”


세탁기는 분홍티의 투덜거림에도 화를 내지 않았어요.


“여긴 온갖 빨래가 뒤섞여 있고, 좁고 아무튼 싫어요. 저처럼 최고급 면으로 만들어지고 디자이너의 정성이 가득 들어간 옷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에요.”


“무슨 소리야, 지금 네 모습은 여기가 딱 이야.”


뒤따라 들어오던 아빠의 셔츠가 얼른 들어가라고 툭 치며 말했어요.

아빠의 셔츠를 노려보던 분홍티는 얼른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았어요. 킁킁 냄새도 맡아보았어요. 땀냄새가 조금 나고, 소매 부분에 보미가 흘린 아이스크림 얼룩이 있었어요.


보미는 참 귀여운 아이지만 옷을 깨끗하게 입지 않는 게 흠이에요.

아빠 셔츠의 말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분홍티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인정할 수 밖 에 없었어요.


“흠흠, 지금은 이렇지만, 제가 백화점에 진열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제 모습을 보고 감탄을 했어요. 저를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 보미의 눈을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알겠어. 투덜이 분홍티야. 얼른 안으로 들어가. 그래야 우리도 들어가지.”


엄마의 치마가 분홍티를 재촉했어요.


빨래들이 비좁게 앉아 자리를 잡자 세탁기 문이 탁 닫히는 소리가 들렸어요.


“자, 이제 시작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찬물이 곳곳에서 쏟아졌어요. 천천히 스며오는 찬 기운에 보미의 분홍티는 몸을 부르르 떨었어요.


“따뜻한 물로 해주면 안돼요?”


“난 시원하고 좋은데. 물놀이 같잖아. 시원해. 그리고 빙글빙글 돌아갈 때가 가장 좋아. 꼭 롤러코스터 탄 거 같아.”


옆에 쪼그리고 앉았던 보미 바지가 킥킥 웃으며 말했어요.


“넌 뭐든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잖아. 네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보미의 분홍티는 보미 바지에게 비웃음을 날렸어요.

곧바로 거품이 빨래들 위로 쏟아졌어요. 부들부들한 거품을 느끼며 빨래들은 비누방울 놀이를 하며 좋아했어요. 분홍티만 빼고요. 분홍티는 거품이 미끌거려 싫다며 여전히 투덜거렸어요.


물을 맞고 빙글빙글 돌아가고 물이 빠지는 일이 반복되었어요.

보미의 분홍티는 세탁이 지루해서 깜빡 잠이 들었어요.


“분홍티야.”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분홍티가 감았던 눈을 스르르 떴어요.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세탁기 안은 텅 비어있고 분홍티와 세탁기 단 둘만 남아 있었어요.


“다 끝났어요?”


“응 다 끝났어. 다 들 일광욕 한다고 빨래 건조대로 갔어.”


“아, 그거...뜨거워서 싫은데.”


세탁기는 분홍티의 말을 듣고 큭큭 웃었어요.


“넌 참 한결같이 투정이구나. 왜 그렇게 여기가 마음에 안 드니?”


세탁기는 진지하게 물었어요.


“생각해봐요. 세탁기안에 들어오자마자 온갖 먼지와 얼룩이 묻은 빨래들 사이에 비좁게 앉아서 마구 구겨진 채 찬물을 맞고, 빙글빙글 돌다보면 어지럽단 말이에요. 물이 빠질 때는 벽에 부딪힐 까봐 무서워요. 왜 이런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을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듣고 보니 힘들 수도 있겠네. 그래도 널 위한 거라고는 생각안하니?”


“말도 안돼요.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 게 날 위한 거라니...”


분홍티는 흥분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보미는 널 좋아해. 그렇지?”


분홍티는 보미가 자신을 입고 거울 앞에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싱긋 웃었어요. 그리고는 자신이 자랑스러워서 힘껏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데 네가 아무리 최고급 면으로 만들어졌고 모양이 예쁘다 해도 보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옷은 입지 않을 거야.”


“더럽지 않아요. 이렇게 좋은 냄새도 나잖아요.”


분홍티는 상쾌한 자신의 냄새를 맡자 기분이 좋아졌어요.


“지금이야 빨았으니까 그렇지. 네가 세탁기 문을 열고 들어올 때는 땀 냄새가 진동을 했어. 그리고 아이스크림 얼룩도 묻어있었고.”


분홍티는 부끄러워 입을 꾹 다물었어요.


“옷들은 입혀지기 위해 태어나. 그리고 입혀질 때 가장 행복해. 그런데 더러운 옷은 아무도 입으려고 하지 않아. 빨지 않은 채 그대로 둔다면 보미 엄마가 걸레로 쓰다가 휙 버릴 텐데. 그래도 괜찮아?”


분홍티는 세탁기의 말을 듣고 끔찍해서 소리를 질렀어요.


더럽혀진 채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처박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소소 소름이 돋았어요.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아? 쓰레기통이 꽉 차면 쓰레기봉투에 담겨져서 쓰레기 소각장으로 보내질 거고, 거기서 봉투에 담긴 채로 불에 활활...”


“악!! 제발, 그만요.”


분홍티는 말만 들어도 식은땀이 줄줄 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자주 나에게로 와. 깨끗해지면 그런 일 없을 거야.”


세탁기는 웃으면서 다정하게 말을 이었어요.


“세탁기님은 나빠요. 그런 끔찍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하잖아요.”


“내가 그랬나? 허허, 미안. 그래도... 진실인 걸 어떡해?”


세탁기는 미안해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어요.


“보미가 널 입어주기 원한다면 빨아서 깨끗해져야 해.”


분홍티는 세탁기의 말을 듣고 투덜거린 자신의 행동이 조금 부끄러워졌어요.


“아무튼 흠흠...고마워요. 깨끗하게 해줘서.”


분홍티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비비 꼬았어요.

분홍티는 깨끗해지니 기분이 하늘로 둥실 날아갈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올게요.”


그리곤 생긋 웃으며. 부지런히 총총 걸어서 세탁기 문을 열고 햇빛이 쨍쨍한 빨래 건조대로 힘차게 걸어갔어요. 세탁기는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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