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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하는 것 1편

2015-12-11 11:37 조회 10,226
마음의 서재
좀 더 천천히, 좀 더 친밀하게 마음의 결을 헤아리는 문장들로 다가갑니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하는 것 ... #1


모든 첫사랑은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한 번씩은 죽는다. 안타깝게 끝나버린 첫사랑을 위한 가상의 장례식을 치러야만, 첫사랑은 매번 ‘그다음 사랑’과의 고통스러운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평생 첫사랑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첫사랑의 애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첫사랑이 이토록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이유는 첫사랑의 경험이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어여뻤을 때, 우리가 가장 순수했을 때, 취업이나 내 집 마련을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는 법조차 몰랐을 때, 첫사랑은 시작된다. 이반 투르게네프 Ivan Sergeevich Turgenev의 《첫사랑》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첫사랑의 상처, 그 인류 보편의 고통을 아름답게 그려낸 명작이다.


귀족 집안에서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외아들로 자란 열여섯 살 소년 블라디미르. 그에게 찾아온 첫사랑 지나이다는 처음부터 경쟁 상대가 많은 여인이다. 블라디미르의 옆집으로 이사 온 지나이다 주변에는 남자들이 넘쳐난다.


블라디미르의 눈에 비친 그녀는 평생 떠들썩한 파티의 안주인일 것만 같은, 청소나 요리나 빨래 같은 허드렛일은 손끝에도 대지 않을 것 같은 여인이다. 자타 공인의 원조 모범생이었던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를 만나자마자 공부도 독서도 딱 그만둔다. 머릿속이 온통 지나이다로 꽉 차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첫사랑을 시작할 때 그 여자가 얼마나 재테크에 능한지, 그 남자의 연봉이 얼마나 될지, 그런 현실적인 요소는 잘 따지지 못한다. 첫사랑의 본질적 매력은‘현실적 유능함’이 아니라‘그가 얼마나 우리 마음속 낭만적 환상을 충족시켜주는가’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모든 것들이 상투적인 배경화면으로 전락하고, 오직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만이 슬로모션으로 포착되는 순간. 저마다 아옹다옹 치고받는 현실의 세속적 경쟁이 무의미해지는 순간. 입학이나 취업을 위한 성실한 자기계발의 노력조차 하찮아지는 순간. 모든 욕망의 화살표가 한 사람의 표정과 말투에 집중되는 순간.


그렇게 첫사랑은 시작된다. 인간이 이토록 강렬한 쾌락을 경험해도 좋은 것인가 싶을 정도로 커다란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 동시에 그 사람을 독점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통이 발목을 붙잡는다. 가장 큰 희열이 시작되는 순간, 가장 큰 고통도 시작되는 것이다. (2편에서 계속)



―〈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하는 것 - 1〉 , 《마음의 서재》, 천년의상상, 2015. 4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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