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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인 듯 식당 아닌 식당 같은 곳 : 헛제삿밥

2015-10-06 11:18 조회 3,862
할머니의 따뜻한 손맛 이야기
할머니의 요리 하나, 인생 하나

식당인 듯 식당 아닌 식당 같은 곳


메뉴판이 없다. 당연히 음식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계산을 위한 카운터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뭐 이런 불친절한 식당이 다 있담? 하지만 사람만은 옹골지게 그득그득 앉아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식당인 듯 식당 아닌 식당 같은 곳’의 주인 신귀순 씨(68세)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잠시 기다리면 맛있는 밥상 차려 줄게요.”


식당이 아닌 이곳의 정체는 동네 구석구석 소문난 ‘맛집’ 신 씨네 집이었다. 몇 분이 지나자 도시에서는 맡기 힘든 채소 고유의 향이 거실까지 번졌다. 코를 킁킁거리며 어린아이처럼 부엌을 기웃거릴 수밖에.


“웬만한 채소는 팔팔 끓는 물에 1분 정도 데치면 각각의 향과 풍미가 살아나요. 너무 오래 삶으면 흐물흐물해지니까 1분이 딱 좋아요.”


데친 시금치, 고사리, 참나물 그리고 볶은 고구마줄기와 가지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깨소금과 참기름을 뿌렸다. 큰 그릇에 사과 알처럼 둥글게 밥을 푼 다음, 나물무침을 조금씩 골고루 담고 양념장 한 숟갈 넣으면 완성. 평범한 비빔밥과 닮은 이 음식은 신 씨가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인 헛제삿밥이다. 실제로 제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제사음식과 똑같이 만들어 먹는 가짜 제삿밥으로, 경북 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통 음식이다.


“가짜지만 그래도 제사음식인지라 자극적인 양념은 넣지 않아요. 원래 간장 양념을 넣어 먹는 음식인데 자식들은 고추장이 더 맛있다며 새빨갛게 비벼먹곤 했답니다.”




제사음식은 마늘이가 고춧가루 등 자극적인 재료는 피하는 것이 원칙이나 헛제삿밥의 양념장을 만들 때는 입맛에 따라 넣어 먹어도 좋다.




슬며시 웃는 얼굴에 잠시 그늘이 드리워졌다. 스물셋에 경북 예천으로 시집온 신 씨는 남편의 동생들까지 키우다시피 하며 헌신했는데도, 되레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문제 삼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친정에 가는 것조차 노골적으로 싫어하셨다. 친정어머니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단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내 나이 서른아홉 때 일이죠. 혼자서 여섯 명의 아이들을 키워야 했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죽자 나를 원망하셨어요. 그래서 그리 모질게 대하셨나 봐요.”


시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미안하다, 얘야.”라는 한마디. 장남과 결혼한 탓에 맏며느리의 역할을 오롯이 해내야 했던 신 씨는 그제야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많던 제사를 추도식으로 대신한 지도 벌써 8년. 하지만 아들딸과 손주들이 다 모이는 명절이면 어김없이 헛제삿밥, 소고기뭇국, 배추전 등 제사음식을 만들어 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명절의 추억과 의미가 잊히지 않도록 말이다.


“이 지역에서는 소고기뭇국을 탕국이라고 불러요. 무랑 소고기, 다시마와 간장을 넣고 국물이 우러나도록 끓이면 돼요. 보통 두부도 많이 넣는데, 텁텁해지니까 잘 안 넣게 되더라고요.”



소기기뭇국은 간을 해서 볶은 재료로 국을 끓이면 각 재료의 맛과 풍미가 살아난다.




경상도 지역 제사상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 또 있단다. 배추 잎에 걸쭉한 밀가루 반죽을 골고루 묻힌 다음 노릇노릇하게 부치는 배추전. 많이 먹으면 느끼하고 물리는 다른 전과 달리 먹는 내내 시원한 청량감이 감도는 별미다.



배추전은 줄기 부분을 살짝 썰어서 평평하게 만들어 부치면 익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신 씨가 평소에 즐겨 만드는 개성 만점 오징어튀김은 명절 밥상에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한다. 젖은 오징어에 소금 간을 하고 밀가루를 묻힌 다음, 달걀옷을 입혀 기름에 튀기면 완성된다. 대부분 바삭거리는 ‘흔한 오징어튀김’을 떠올리겠지만 땡! 요리의 고수들은 이미 차이점을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난히 부드럽고 연한 ‘촉촉 오징어튀김’의 비결은 튀김가루 대신 밀가루를 쓴다는 점. 지금도 자식들이 오면 가장 많이 찾는 엄마표 음식이다.


“엄마는 상당히 도전적인 신여성이었어요. 누구에게 요리를 배우지 않고도 항상 새로운 시도를 했죠. 밖에서 먹은 음식이 맛있으면 재료를 기억했다가 집에 와서 자식들에게 만들어주곤 하셨어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음식을 떡 하니 차려내던 엄마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지금도 신기할 정도랍니다.”


묵묵히 어머니 곁을 지키던 둘째 아들의 말이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막내아들도 웃으며 말을 보탰다. 한 번은 지나가는 신녀에게 점을 봤는데


“어머니가 여장부다. 여자인데 정말 장군감이다”라며 존경심을 표했다고 한다. 딸 셋 아들 셋, 여섯 명의 자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역시 모두 어머니란다. 신 씨는 33년째 다닌 보험회사에서도 한때는 ‘보험왕’으로 뽑힐 만큼 억척스럽게 일하며 자식들을 길러냈다.


여중호걸女中豪傑 의 성품 영향이었을까. 음식을 만들 때도 손이 커서 한 번에 20~30인 분을 만들 때가 많았다. 육남매 중 하나가 소풍을 가도 그날은 모두에게 ‘김밥의 날’이 되었다. 커다란 밥솥에 밥을 두 번이나 지어 몽땅 김밥을 쌌으니 그 양은 어마어마했다. 육남매는 도시락뿐 아니라 아침저녁도 김밥을 먹었다. 운동회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


“서울에서 손님이 오신다기에 오늘도 평소처럼 음식을 준비했는데, 만들다 보니 눈덩이처럼 그 양이 늘어나지 뭐예요? 고민도 하지 않고 곧장 이웃들을 초대했어요.”


신 씨에게 요리란 함께하는 기쁨이다. 그래서 특별한 손님이 오지 않을 때도 이웃들과 나눌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했다. 전화 한 통이면 거실은 줄 서서 먹는 식당처럼 앉을 자리 없이 가득 찼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땅콩조림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땅콩을 그냥 간장과 물엿에 조리면 조금 눅눅해져서 맛이 없어요. 안주로 먹는 땅콩처럼 살짝 볶아서 조림으로 만들면 과자 같은 반찬이 되거든요. 밥반찬으로 그만인데 아쉽게도 지금은 딱 떨어졌네요.”


북적이는 사람만큼이나 혼자 부산스럽게 부엌을 드나들던 신 씨는 손님들 챙기느라 2시가 다 되어서야 자신의 밥을 챙겨 먹었다. 항상 넉넉한 인심으로 밥상을 차리는 신 씨의 부엌에서는 지나침은 미덕이 아니라는 과유불급의 진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내가 요리하는 음식들은 아주 흔하디흔한 것들이에요. 하지만 음식은 무얼 먹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내 레시피의 진짜 비결은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죠.”



▶헛제삿밥 (4인분)

① 참나물 300g, 시금치 300g, 고사리 300g을 각각 끓는 물에 1분 정도 데친 다음, 소금을 반 줌을 뿌리고 참기름 1큰술씩 넣어 무친다.

② 먹기 좋게 썬 가지 2개를 소금에 살짝 절인 다음 씻어낸다. 가지와 고구마줄기 300g에 각각 소금을 반 줌씩 넣고 볶은 뒤 참기름을 1큰술씩 넣어준다.

③ 진간장 5큰술, 대파 3쪽, 참기름 2큰술, 깨소금 1작은술, 고춧가루 약간, 가늘게 썬 고추 1개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④ 고슬고슬하게 지어놓은 밥 한 공기와 다섯 가지 나물을 넓적한 그릇에 함께 담는다.

⑤ 양념간장이나 고추장을 넣고 비며 먹어도 좋고, 양념장을 넣지 않고 그냥 먹어도 심심하니 맛있다.



▶소고기뭇국 (4인분)

① 소고기 300g을 먹기 좋게 썬 다음 냄비에 참기름 2큰술을 넣고 살짝 볶아준다. 이때 소고기를 넉넉히 넣어서 만들면 국물 맛이 더 진하게 우러난다.

② 고기 표면이 익으면 썰어둔 무 반 개와 소금 한 줌 넣고 볶는다.

③ 물 8컵과 다시마 7g을 잘게 썰어서 함께 넣고 끓인다. 거품이 생기면 그때그때 걷어내야 하고, 두부를 넣는 경우 국물이 텁텁해질 수 있으니 참고하자.

④ 30분이면 재료가 다 익지만, 1시간 정도 충분히 끓여주면 한층 깊이 있고 감칠맛 나는 국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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